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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한19 43회 당신만 모르는 한국사19 <3.1운동> 편

by ruirui 2017. 3.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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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 프리한19 방송화면 캡쳐

한국인 이라면 꼭 알아야할,

반드시 기억해야할 역사!! 

당신만 모르는 한국사19

 

<3.1 운동편>

 

 

19위 - 일본, 조선을 가지고 놀다 <일출신문 조선쌍육>

 

일본이 조선을 강제병합 한 이후에 한 지역신문사에서 발행한 부르마O과 비슷한 이 게임,

이 게임은 야만적인 조선을 강제병합 한다는 말도 안되는 내용입니다.

이 <일출신문 조선쌍육>은 놀이를 통해 식민사관을 주입하려고 했고,

대외침략의 정당성을 교육하려했던 파렴치한 도구였습니다.

 


18위 - 신토불이 운동의 원조는 '이것?'

 

1920년대 일제는 경제 불활을 타개하기 위해 조선식민을 더 강화하고 조선의 경제권을 장악하고자 합니다.

특히 일본 기업이 조선 진출을 쉽게 하게하는 회사령으르 도입하자,

독립운동가 조만식을 주축으로 우리 것만 쓰자는 물산 장려 운동을 시작 했는데요

이것이 신토불이의 원조입니다.

 

 

17위 -  <체험! 3.1 운동의 현장>

 

3.1 절의 의미를 되새기기 좋은 3.1 운동의 현장을 추천합니다.

경기도 안성의 <안성3.1 운동기념관>에 가면 각종 독립운동 자료들을 만나보실수 있고,

3월 1일에 서울 강북구 우이동 봉황각에 가면 1919년 3월1일을 그대로 체험 할 수 있는

< 만세재현행사>를 만나 볼 수 있습니다.

 


16위 - 제주를 지킨 아름다운 이름 '해녀'

 

1930년대 일제의 경제수탈이 강화되고 해녀에 대한 수탈이 점점 더 심해졌습니다.

결국 해녀들은 32년 1월12일 채취 도구 인 빗창을 들고 시위합니다.

해녀들은 끊임없는 탄압에도 굴하지 않고 끊임없는 탄압에도 굴하지 않고 끝까지 싸워냅니다.

현재 30년대 최대 여성주도 항일운동으로 평가 받고 있습니다.

 


15위 - 항일의 섬, 소안도의 노래

 

365일 태극기를 게양하는 섬, '항일의 섬' 이라 불리는 소안도의 기록들,

일제강점기때 섬 전체를 무단통치한 일본은, 섬 전체를 강탈하고 높은 소작료와 노동력 착취 하였지만,

일제에 굴복하지 않았던 소안도 주민들은 1923년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설립한 사립소안학교의 교육을 통해서 

더 적극적이고 체계적인 항일 운동을 하였습니다.

 

 

14위 - 대한독립만세를 외친 '논개의 후예들'

 

4월 1일, 전국에서 3.1 운동 함성을 외치던 그 날! 황해도 해주에서는 여인들의 함성이 들렸습니다.

명의 기생 결사대는 4월 1일에 자신들이 직접 짓고 인쇄한 5천 장의 독립 선언문을 뿌리고,

옥양 목에 그린 태극기를 들며 민족 독립을 위해서 대한 독립만세를 외쳤습니다.

 

 

13위 -  3.1운동의 주역, <OO꾼>

 

인터넷 없던 시절 주요 도시뿐만 아니라 농천까지 3.1 운동이 퍼질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만세꾼 덕분이었습니다.

이들은 만세 운동 전에 전단지를 돌리며 만세운동을 알리고 태극기를 배포했고요,

만세운동을 위해 사람들이 모였을 때 만세!를 선창하는 역할을 수행했다고 합니다.

 


12위 -  나라사랑의 '나이순'이 아니잖아요

 

경남 밀양에서 만세운동을 계획하고 이끌어 징역을 선고 받은 윤수선 외 6인의 나이 열다섯 살.

천안에서 만세운동을  계획하고 독립만세를 외친 소녀 한이순과 민옥금,

이들이 감옥에 갇혔던 나이 열세살, 열네 살이었습니다.

어린 나이에도 그들은 일제와 싸웠습니다.

 

 

11위 -  우리가 기억해야할 '독립운동가'

 

가족 중 건국훈장을 받은 사람이 9명 이상일 정도로 민족 독립을 향한 열정으로  가득찬 가족,

바로 유관순의 가족입니다.

유관순 열사의 아버지 유중권, 어머니 이소제, 오빠 유우석, 사촌언니 유예도, 유예도의 아버지 유중무 등

유관순의 가족들은 모두 목숨을 걸고 독립을 위해 싸웠습니다.

 


10위 -  3.1 운동을 자제 하는 단체가 있었다?

 

3.1 운동 당시 들려오던 또 다른 외침, 독립운동을 자제하라! 당시의 친일인사들은 자제단이라는

단체를 스스로 결정해 일본에 잘보이고자 합니다.

그들은 독립운동가를 밀고하고전국을 돌며 3.1운동을 자제시키려하고 참가자를 진압,

구가 시켰다고 합니다.

 

 

9위 - 90년 만에 발견되 태극기의 정체

 

서울 은형구에 게양된 정체불명의 태극기,

이 태극기는 임시정부 의정원이 제정한 태극기로 서울 진관사에서 발견된 것입니다.

이 태극기를 숨긴 사람은 진관사를 거점으로 청년들을 교육해 독립군으로 파견하고

군자금을 담당했던, 불고계 독립 운동의 중심인 백초월 스님이라고 합니다.

 

  

8위 - 독립투사 발굴 '외길인생'

 

아직도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항일 투사들이 많습니다.

무명의 항투사 발굴을 위해 20년 외길을 겅온 이가 있습니다.

바로 경남 독립운동 연구소의 정재상 소장인데요, 그가 직접 발굴한

무명의 항일투사가 500명이 넘고 이 중 훈장을 받은 독립투사가 100명이 넘는다고 합니다.

 

 

7위 -  아리랑과 한글을 사랑한 푸른 혼

 

외국어 교사로 조선에 온 호머 헐버트. 그는 인제의 실목격한 후 독립운동에 가담합니다.

그는 최초의 한글 세계지리 교과서 사민 필지를 저술하고, 독립신문 제작, 을 사늑약 체결 반대운동등

독릭운동에 협력하고 구전민요인 아리랑을 악보로 기록하는 업적을 남겼습니다.

  

  

6위 - 시베리아 '삭풍회'를 아십니까?

 

해방을 앞두고 포로로 잡힌 강제 징용 조선인 들은 시베리아 포로수용소에서 강제노동을 하게 됩니다.

40년이 지난 후 그때의 청년들은 '삭풍회'를 조직해 일본 정부에 피해 보상을 제기하지만 번번히 기각당했습니다.

2012년 '삭풍회'는 해산했다고 하는데요, 꼭 해결 되어야할 문제입니다.

 


5위 - 3.1 운동을 최초로 알린 사람은?

 

3.1 운동을 세계에 최초로 알린 사람은 앨버트 테일러 라고 합니다.

미국 UPA의 서울통신원이었던 그는 독립 선언서를 몸에 숨겨 전세계에 3.1운동을 보도했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일본 군경이 제암리에 들어가 천도교인 30명을 학살한 제암리학살 사건도 그가 세계에 알렸다고 합니다.

 

 

4위 -  3.1 운동 기념 민주 올레 코스

 

3.1 운동을 계획한 장소가 있는 중앙고등학교에서 출발해 한용운 시인 옛집을 거쳐

민족 대표 33인 중 한 명인 이종일 선생 동상이 있는 수송 공원,

독립 선언식을 거행한 태화관 터에 있는 태화 빌딩, 3.1운동 기념비가 있는 승동교회까지!

우리 역사의 발자취를 걸어 보시는 것은 어떨까요?

 

 

3위 -  우리 동네에서 만나는 '평화의 소녀상'

 

2011년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1,000회를 맞아

서울 일본 대사관 앞에 첫 평화의 소녀상이 세워졌습니다.

이후 6년 동안 전국에 약 60개의 평화비가 건립되었는데요,

이들의 위치 궁굼하시다면 검색창에 전국 소녀상 위치를 검색해 보세요!

 

  

2위 -  일제를 위협한 '백발'의 독립투사

 

서울역 광장, 한 손에 폭탄을 쥔 채 서있는 이분! 독립운동가 강우규 의사입니다.

강우규 의사는 사이토 마코토 조선총독을 직접 처단하기 위해

서울역(당시 남대문)역에서 사이토 마코토에게 폭탄을 투척합니다.

안타깝게도 폭살은 살패에 그치고, 강우규 의사는 일제에 의해 사형당합니다.

 


1위 - 역사를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일본은 3.1 운동에 대해 어떻게 가르치고 있을까요? 일본 내 채택률 1위 교과서에서는

매우 간략하게 기록되어 있고, 우익교과서에는 초기에 만 무력진압을 했을 뿐

이후에는 조선을 억압하지 않았다고 역사를 왜곡하고 있습니다.

이 우익교과서는 현재 오사카 시에서 일괄 채택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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