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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한19」66회 - 아프지만 꼭 알아야 할 역사 19

by ruirui 2017. 8.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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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위 - 삶의 근간, 땅과 쌀을 빼앗기다.


조선의 외교권을 박탈하는 을사늑약을 강제로 체결한 후, 일본은 토지조사사업으로 소유주 세금을 높이고, 주인없는 땅 40%를 빼앗고 그땅에서 쌀을 수탈해갔습니다.


18위 - 숟가락까지 빼앗은 '국가총동원법'


1943년 3월까지 공포된 법령 약 167개



중일전쟁을 일으킨 일본은 물자와 인력 확보를 위해 국가총동원법을 시행합니다. 식량 수탈은 기본으로 1941년 금속류 회수령을 시행해 숟가락 놋그릇은 물론 벽에 박힌 못까지 뽑아갔다고 합니다.


17위 - 파라다이스에 깃든 '조선의 한'


일본은 농지를 주겠다며 태평양 섬으로 조선인을 강제 징용하여 사탕수수 재배나 대규모 군사 시설 구축, 심지어 태평양 전쟁 이후에는 미군을 향해 자폭하라는 등 자살까지 강요했다고 합니다.



16위 - 돌아오지 못한 4만 명의 동포


사할린 물자 착취를 위해 조선인 4만 명이 강제 노역에 동원되었지만, 아무도 고국으로 돌아 올수 없었습니다.


15위 - 해남 광부들을 꼭 기억해주세요.


일본으로 강제 동원되어 하루 12시간이 넘는 노동과 굶주림속에서 군수물자 생산에 필요한 명반석을 채취한 해남 옥매광산의 광부들은 광복 후 귀향선을 타고 고향으로 가던 약 225명이 탄 배는 화재로 인해 침몰했습니다.


14위 - 십오엔 오십전


관동대지진으로 일본 민심이 흉흉해지자 국민의 불만을 돌리기위해 조선일들을 무자비하게 학살합니다. 관동대학살 당시 조선인을 구별해내기 위해 '십오엔 오십전'이라고 말하게 시키고 기미가요를 시켜 발을이 어눌하거나 지체하면 살해했다고 합니다.



몇 일전에 이재훈주연의 '박열' 영화를 보았는데요. 일본은 관동대지진으로 국민의 불만을 돌리려 무고한 조선인 6천 여 명을 학살했고, (14위한 십오엔 오십전이 이부분에서 나옵니다..) 그 사건을 은폐하기위해 박열을 대역사건의 배후로 지목해 몰아가는데.. 박열은 계략을 눈치채고 사형까지 무릅쓰며 당당하게 맞서는 역사적인 재판입니다.


13위 - 일본제국에 맞선 아나키스트 '박열'


박열의사와 그가 소속된 단체 불령사 회원을 '비밀결사의 금지'위반으로 구속하고 이후 '대역죄'혐의로 기소되었지만, 목숨이 걸린 재판중임에도 일왕 폭살 계획을 인정하며, 일제에 당당하게 맞서 저항의식을 보여주었습니다.



12위 - 그 아픔을 기억합니다 '강제징용 배지'


이 배지들은 강제징용 피해자들이ㅡ 아픔을 기억하기 위해 만든 배지로 배지를 기획한 공익광고 기획자 김영우 씨는 위안부 피해 사실으르 알리기 위해 '소녀상 미니 블록'을 기획하기도 했습니다. 이 배지는 '소녀 해방단' 홈패이지에서 구입 가능하다고 합니다.


11위 - 망향의 동산 누워있는 사죄비


자서전의 인세로 1983년에 사죄비 건립까지



위안부 강제 동원임무를 맡아 자신의 죄를 참회하는 의미로 세운 사죄비지만, 최근 그의 장남이 위령비로 교체하며 자신의 아버지의 죄를 부정하고 있다고 합니다.


10위 -  광산에 서린 피, 땀 그리고 눈물


영문도 모른 채 일본 교토 '단바'의 광산으로 끌려간 조선인들은 군수물자 조달을 위해 갱도 안에서 10시간 넘게 망간을 캐야했습니다. 강제 노역을 했던 3천여명, 이 당시 강제 논역을 했던 故이정호 씨는 후유증을 앓으면서도 이 사실을 알리기 위해 실제 망간 광산에 망간 기념관을 열었다고 합니다.



9위 - 일본의 군신이 된 조선 청년들


태평양 전쟁의 자살특공대 '가미카제 특공대'에 조선인 11명이 있지만, 자의적이 아닌 협박의한 것, 하지만 일본은 이들을 야스쿠니 신사에 합사시켜 침략 전쟁 미화에 이용하고 있다고 합니다.


8위 -  기억해야 할 '그날의 목소리'


일본이 은폐하고 부정한 연사 위안부, 故김학순할머니는 일본군 위안부 생존자로서 1991년 국내 최초로 공개증언을 했습니다.



6위 - 어둠속에 묻힌 강제 학살의 진실


하와이라 불리는 하이난 섬에 강제 징용된 조선촌이 있습니다.  그곳에는 '천인갱'이라는 커다란 공터에는 일본군이 자신들의 만행을 지우기 위해 군수물자와 조선인들을 전부 살해해 묻었기 때문입니다.


5위 - 도쿄에 갇힌 '제왕의 투구'


우리의 문화재 '조선 대원수 투구'라는 이름의 이 국보는 조선 왕가 소장품으로 고종까지 내려온 조선 왕실을 상징하는 유물이지만 현재 도쿄 국립 박물관에 소장되어있다고 합니다.


4위 - 그들은 왜 돌아오지 못했나?


광복 이후 일본에서 강제 노역하던 3천 명 이상의 조선인을 태운배가 부산으로 향했습니다. 약 4,730톤의 이 거대한 규모의 배는 일본 바다에서 두동강 나 침몰하였습니다. 이 당시 일본은 미군의 기뢰를 건드려 침몰했다고 발표했지만 고의로 폭발시킨 것이라는 내부 문건이 발견되었습니다.


3위 - 독도 수호신이 사라진 이유


독도의 바다사자인 독도의 수호신 '강치'는 19세기 초반까지  약 5만마리가 서식했지만, 일본의 수산업자 나카이 요자부로가  가죽을 얻기위해 마구잡이로 포획하여 결국 강치는 멸종되었습니다.


2위 - 부산으로 따나는 '먹먹한 여행'


부산의 일광광산에는 인부들의 가옥과 사무실이 남아있어 강제 징용 현장을 생생히 느껴 볼 수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부산 남구 <국립일제강제동원역사관>에서는 강제 동원자들의 수기,사진,유품들이 전시되어있다고 합니다.



1위 - 지옥에 갇힌 조선일들


군함도라 불리는 일본 나가사키 현의 섬 하시마.  1,000m 아래 숨삭힐 듯 뜨거운 갱도에서 조선 청년들은 강제 동원되어 노역에 혹사당했습니다. 군한도는 강제 동원 역사를 알리는 조건으로 1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지만, 일본은 그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습니다.



강제동원 역사와 진실을 전 세계에 알리는 조건

유네스코에 '조건부등재'된 군함도



2017년 12월 1일까지 

반드시 이행해야 하는 약속


출처 :tvN프리한19 방송화면 캡처


하지만 유네스코에 등재된지 2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군함도 그 어디에도 강제징요에 대한 설명은 아직도 명시되지 않은 상황입니다.


프리한19 매주 (화) 저녁 8시 40분 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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